-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 나는 반대편의 고속열차를 탔다.
아무생각없이 이탈리아로 왔다.
는건 너무 방탕하고도 부르주아적 발언이다.
도착하는 순간까지, 아니 도착해서도 내가 정말 여행을 왔으며
이곳이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유럽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도 거짓말처럼 시작된 이 여행계획은 현실이 되어버렸고,
난 지금 로마시 한가운데, Via Quintane Fontane(이른바 네분수길) 위의
Hostel Ciao Bella에서 차분히 저녁을 맞고 있다.
- 내가 묵고있는 Ciao Bella. K&K는 뭔지 모르겠다. B&B는 Bed&Breakfast지만.. K&K는..?
내게 주어진 이 좋은 기회를 마치 모래처럼 흘려보내서는 안된다는
묘한 책임감이 나를 글쓰기로 이끈다.
로마의 밤을 좀 즐겨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지만
술은 와인 반 병으로 충분하고 축구도 결과만 보면 되었다.
아니, 사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고나 할까.
- 카르보나라의 '원조집' La carbonara.나는 사실 카르보나라보다 하우스 와인이 더 인상깊었다.
로마를 찾아 내가 가장 먼저 보고싶었던 것은 팔라티노 언덕이었다.
로마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 그곳에서 이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달까.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시간의 유구함이었다.
내가 장안에서 보았던 병마용도, 투르판에서 보았던 흙먼지 속의 유적에도
로마와 같은 시간의 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화정 로마의 건물 위에 다시 황제의 궁이 지어지고,
원로원 회의가 열리던 곳은 다시 교화가 된다.
로마가 특별한 이유는 로마가 오래된 흔적을 가져서가 아니라,
로마의 유적들이 그 엄청난 시간의 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팔라티노 언덕. 로마는 과거의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겹겹이 올렸다.
2000년대 로마는 또 이 시간의 켜에 무엇을 또 쌓아올릴까.
21세기의 로마는 참, 발랄하다.
아침 시장의 시장 할머니, 정장을 빼입은 이탈리아 신사 정도나 좀 점잖을까.
골목만 들어가도 로마의 벽은 그래피티 천지다.
길에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다는 착각을 하게할 만큼의 오토바이가 있다.
부릉부릉거리는 폭주존 사운드에 그래피티.
축구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광장과 빅토리오 엠마누엘 II 기념관, 콜로세움에서
그늘을 찾아 한숨 길게 늘어져있는 그들.
자신이 깔고 앉은 대리석 기둥의 무게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로물루스의 후손들. 시저와 부르투스의 자식들일 것이다.
-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 밑 그늘에서 쉬는 로마 청년들. (관광객인가)
그들의 널브러진 모습은 기념관의 엄숙한 전시와 대조적이다.
아무생각없던 내게 여행의 큰 질문이 하나 생겼다.
로마를 이루는 시간의 켜는 어떻게 쌓여왔는가.
현재의 로마를 이루는 사람들은 어떠한 켜를 만들 것인가.
당분간, 로마를 떠나지 않을 이유가 생겼다.
- 이걸 못사서 안 떠나는 것은 아니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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