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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Idea Note 2011/05/20 10:11 posted by 박형진
논문의 구성을 뜯어고치기에 앞서 두 가지 질문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1. 니가 이 사례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다를 결론이 무엇이냐
2. 니 사례는 어떠한 차원에서 특수성을 극복할 것이냐

이 두 질문이 논문의 마지막 장은 4장을 구성하려는 나를 가로막고 있다.


우선 지금처럼 '집체'를 주인공으로 놓는 서술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마을의 정치적 구성이 내게 매우 흥미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논문은 '사회주의 신농촌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쓸 경우 수많은 촌민들의 경제적 실천을 자세하게 언급하는 의미가 사라진다. 마을의 정치적 구성은 촌 집체, 그리고 촌민의 경제적 실천과 얽혀들어가는 차원에 한해서만 언급해도 충분히 성공적일 것이다. 다만 이것은 이 논문이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쉽게 사례의 특수성을 극복하는 길이니까.

처음에 의도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이 논문이 의도하는 것은 중국 농촌의 상황에 위치하여 작동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요동치고, 때로는 단절되거나 비가시화하는 '연결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연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촌 집체나 촌민들의 경제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이 연결들은 순수하게 경제적 차원에만 있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마을이란 이름, 경계, 혹은 실체는 촌민에게도 촌 집체에게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은 - 그것이 이름이든, 경계이든, 혹은 실체이든 - 분명 중요한 현실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물론 마을의 정치적 구성 역시 연결들 - 집체와 상급정부의 연결들 - 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것들의 성격은 분명 상이하다. 

마을의 정치적 구성과 경제적 구성을 동등한 무게로 두고 이것이 얽힌 상황을 설명하였을 때도 여전히 물음은남는다: 너의 그 특수한 마을의 사례가 무엇을 말하느냐고. 그 말의 경제적 상황은 너무나 특수해서 중국농촌의 상황을 대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이 지점이 내가 막혀버린 혈자리가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기와 할 수 있는 얘기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놓여져있다.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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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서의 번뇌

분류없음 2011/05/15 10:17 posted by 박형진
왜 인류학자는 '마을'을 연구하는가? 마을은 왜 인류학적 연구의 단위로서 일종의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는가? 나는 마을이란, 고루하지만 견고한 권위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유독 이 마을에 끌렸던 이유일 것이다. 촌의 기층정치, 사회조직이 거의 유명무실화하는 중국의 현실 속에서 이 마을만은 촌 집체가 유독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즉, 이 곳에서는 '마을'이 하나의 견고한 실체처럼 내세워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을 조심스럽게 뜯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마을' 이야기를 '집체'와 '촌민'의 이야기로 분해하였다. 이것이 내 논문의 일차적 작업이었다.

이 논문의 두 번째 줄거리는 '연결'에 대한 것이었다. 왜 전지구화에 대한 수많은 담론에서 농촌과 농민, 농업은 충분히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혹은 농민과 농촌의 현실을 다루는 민족지가 왜 이러한 전지구적 연결을 다루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그 연결들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나의 능력 부족인지 혹은 현지 선택의 실수였는지 나에겐 그 연결이 잘 보이지 않았고, 그리고 보일듯 말듯한 연결들은 다시 내 손에서 미끄러져나갔다. 연결을 찾아나서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 나의 경험 - 연결이 내 손에 잡힐듯 미끄러지는 현실 - 이 바로 중국 농민이 세계와 맺고 있는 연결의 핵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소위 '조우 없는 연결'이란 문구를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콜로퀴엄과 지난 일주일간의 번뇌, 대화, 술자리 등을 통해 내가 막힌 지점을 찾아가고 있는데,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충돌이 그 지점인듯 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마을을 '촌민'과 '집체'로 아예 용해시켜버렸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제쳐놓고라도 이 충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을이라는 실체, 경계, 혹은 이름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적인 묘사여야 한다. 하지만 연결이 미끄러지고 흐려지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연대기적 묘사여야 한다. 아니, 이러한 당위는 둘째치고 전자를 얘기할 때 내가 동원하는 마을의 성공담과, 후자를 얘기할 때 얘기하는 마을의 실패담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고 따로 놀고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를 버려야하는가? 아니면 조금 더 머리를 싸매어 두 가지를 연결시킬 이야기의 틀을 짜내어야 하는가? 번뇌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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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몽타주, 그 두번째

Idea Note 2011/04/11 23:43 posted by 박형진


경제적 선택
, 집체, 전지구적 연결: 한 중국 농촌마을의 인류학적 재구성

 

전지구화, 연결, 그리고 중국의 한 농촌마을

흔히들 우리가 전지구화된 세계(globalized world)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계를 이루는 요소 중, 무엇이 전지구적(global)인가? 도시, 혹은 농촌이 전지구적인가? 이것들은 특정한 지역(local)을 점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이 전지구적인가? 지구 전역을 떠도는 상품, 자본, 정보가 전지구적인가? 이것들은 특정한 지역에서 탄생하였고 특정한 경로로 움직여 여전히 지구 위에서 특정한 지역을 점하고 있다. 이들 역시 본질적으로 지역적인 존재다. 진정 전지구적인 것은 이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실천들, 또 그 실천을 주조하고 실천에 의해 주조, 변형되는 다양한 연결들이다.

연결은 무엇이며 왜 이것이 전지구적인가?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은 나와 연결된 존재이다: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나 역시 이들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연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삶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식당 혹은 시장에서 흔히 접하는 중국산 농산물을 매개로 우리의 경제적 삶과 중국 농민의 경제적 삶은 연결되어 있다. 비록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함에도 말이다. 특정한 지역을 점유하고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통로, 그래서 지구상의 수많은 구성원의 삶을 상호의존적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지구적 연결이다. 사회과학자들이 즐겨 언급하는 전지구화(globalization)란 이 연결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져 있고, 이 연결을 통해 수많은 상호작용이 오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의 표현이다.

본 연구는 한 중국 농촌마을, 랴오닝성 펑청시(辽宁省 凤城市)의 다리슈촌(大梨树村)에 대한 민족지이다. 정확하게는 한 중국 농촌마을을 전지구적 연결들 안에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는 상태로서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구체적으로는 마을의 집체 촌정부이자 영리목적의 회사인 및 농민들의 경제적 실천이 이러한 연결들을 어떻게 창출, 활용하고 변형해가면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연결과 실천을 통해 삶을 꾸려가는 농민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I.        서론

1.     문제의식

2.     연구의 대상 및 연구방법

2.1. 연구대상 개괄

2.2. 연구방법

3.     연구의 이론적 배경

3.1. 중국연구/농촌연구의 맥락

3.2. 경제행위, 경제적 행위자 연구의 맥락

3.3. 전지구화(globalization) 연구의 맥락

4.     논문의 구성

 

논문의 구성

 

 II집체-세계에서는 주로 촌 집체가 주도한 다리슈촌의 경제적 발전사를 살펴볼 것이다. 가난하고 농경지도 부족한 산촌마을 다리슈는 개혁개방 이후 촌 집체의 기업가적 실천에 의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러한 발전 덕분에 중앙정부 및 성()정부로부터 사회주의 신농촌 모범촌등 다양한 칭호를 받으며 주목받아왔다. 다리슈의 성공은 각종 매체 및 출판물에 의해 환경친화적 개발, 치수치산 사업, 지도자의 선견지명, 마을 사람들의 근면정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지만, 다리슈촌 집체가 주도한 사업은 기본적으로 마을 외부의 발전 공간을 활용하거나 외부의 자본 및 구매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내부의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 다리슈의 경제적 발전에는 다양한 마을 외부의 행위자들이 연루되었으며, 촌 집체가 어떠한 외부와의 연결들을 창출, 확대하면서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이 장의 목표이다.

II.        집체-세계

1.     회사로서의 마을: 다리슈촌 집체의 구성

2.     다리슈촌의 발전사

2.1. 도시로 간 농민: 상업, 호텔업, 건설업

2.2. 도시민이 찾아오는 농민: 여행업의 발달

2.3. 수출하는 농민: 오미자 사업

3.     촌집체의 발전과 외부

3.1. 펑청: 발전의 공간

3.2. 여행객

3.3. 상급정부

3.4. 한국

4. 소결: 외연의 확장으로서의 발전사

 

III농민-집체-세계에서는 집체 주도의 경제적 실천이 농민의 경제적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다룰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 농민의 경제생활은 중앙정부의 경제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집체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지만, 개혁개방으로 토지 및 생산의 자유를 얻게 된 농민은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집체와 경제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다리슈촌의 집체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마을 주민에게 복리혜택의 형식으로 배분하는 한편, 대규모 인원 및 토지가 필요한 사업에 마을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다리슈의 농민들은 집체의 피고용인이 되거나, 사업의 일부를 승포받는 방식으로 집체의 사업에 참여하였다. 직접 집체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도 집체의 사업행보를 참조하여 새로운 작물을 심거나 이와 관련된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집체의 사업 중 일부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집체와 외부의 경제적 관계도 그만큼 약화되었고, 농민이 참여하거나 참조할 수 있는 집체의 사업이 줄어들면서 농민과 집체의 경제적 연결 역시 약화하는 추세다. 이런 경향 속에서 농민들은 집체와 집체의 사업을 자신의 농사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존재로 재평가하고 있다. 집체의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농민들에 대한 참여관찰 및 인터뷰 자료들은 집체가 어떻게 외부 세계의 경제적 기회 및 이익을 농민들에게 매개하는지, 그리고 농민의 경제적 삶에서 집체의 비중과 역할은 무엇이며 농민이 집체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III.        농민-집체-세계

1.     주어진 환경과의 상호작용: 농민의 경제적 삶의 구성

1.1. 개혁개방과 경제적 삶: 토지와 산지의 분배

1.2. 새로 생긴 선택의 영역: 활동의 선택 / 작물의 선택 / 판매의 영역

2.     농민의 경제적 삶과 집체

2.1. 공동운명체로서의 집체

2.2. 시혜자(patron)로서의 집체

2.3. 참고자로서의 집체

3.     약해지는 연결

3.1. 집체-세계: 집체 사업의 좌절과 실패

3.2. 집체에 대한 재평가: '방해자'로서의 집체

3.3. 농민-집체: 돌아오는 토지

4. 소결: 세계의 매개자로서의 집체

 

IV농민-세계에서는 집체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혹은 집체의 매개 역할이 약화된 상황에서의 농민의 경제적 선택과 경제적 기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집체의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사업의 실패로 다시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된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좀 더 익숙한 작물을 재배하고, 잘 아는 이웃 혹은 마을에 찾아오는 중간상인을 통해 농산물을 판매한다. 그러나 일부 농민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 이들은 나름의 네트워크를 동원해 시장에 대한 정보 및 투자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물을 재배, 판매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친척 혹은 친구들의 연망을 이용해 근교 도시 혹은 대도시로 나가 농사가 아닌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든 보수적인 선택을 하든, 이들의 경제적 선택 이면에는 한정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된 시장과 세계에 대한 이해, 혹은 상상이 깔려있다. 이러한 상상에는 수출을 통해 (부유해보이는) 외부세계의 부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이러한 부가 무지한 농민들(라오바이싱(老百姓))이 아닌 수출의 연결망을 잘 알고 활용하는 사업가(라오반(老板))들에만 돌아갈 것이라는 소외감이 혼재하고 있다. 

IV.        농민-세계

1.     농민의 경제적 선택과 외부

1.1. 마을 내에서의 교환: 이웃간의 호혜적 교환 / 옥수수

1.2. 마을 내의 중간매매책: 오미자(이웃 / 공장)

1.3. 마을로 들어오는 중간상인: 양잠, 오미자

2.     모색: 새로운 연결의 탐색과 활용

2.1. 판란근의 사례

2.2. 깻잎, 검은콩의 사례

2.3. 일시적 외부 이주: 젊은 층들의 사례(슈퍼마켓, 알바, 미용실)

3.     상상: 가격으로 표상되는 세계

3.1. 집체-세계의 교훈: '좋았던 시기'와 수출

3.2. ‘풍요로운 드라마 속 한국과 가격의 해석

3.3. 새로운 상상과 모색: 연구자의 개입효과

4.     소외: 부유한 세계, 불행한 농촌

4.1. 라오반과 라오바이싱

4.2. '농민의 운명'

 

결론적으로, 본 논문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리슈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경제적 실천과,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외부 존재들과의 연결이 갖는 성격이다. 이 연결들은 시장경제체제에서 농민이, 그리고 농촌이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다. 꾸준히 부를 가져다주던 연결이 끊기거나 약화되는 순간, 농민과 집체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연결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끊임없이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이 속에서 새로운 연결의 기회를 모색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세계는 손에 닿지 않는, 엄청난 불확실성과 복잡성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풍요로운 외부세계와 자신은 다양한 경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그 풍요로움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며, 자신은 그 풍요로운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처럼 연결되어야 생존할 수 있지만 이 연결됨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희석되고 지워진다. 연결에 대한 기대와 그로부터의 소외, 연결됨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이것이 비가시화하는 과정, 중국 농민의 경제적 삶은 이러한 어긋남들 속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V.        결론: '조우 없는 연결(connection without encounter)'

without : …이 없이, …이 없는, …을 갖지 않고, …이 없으면, 없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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