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2008.6.10-11

분류없음 2008/06/12 04:52 posted by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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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 나는 반대편의 고속열차를 탔다.

아무생각없이 이탈리아로 왔다.
는건 너무 방탕하고도 부르주아적 발언이다.

도착하는 순간까지, 아니 도착해서도 내가 정말 여행을 왔으며
이곳이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유럽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도 거짓말처럼 시작된 이 여행계획은 현실이 되어버렸고,
난 지금 로마시 한가운데, Via Quintane Fontane(이른바 네분수길) 위의
Hostel Ciao Bella에서 차분히 저녁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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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묵고있는 Ciao Bella. K&K는 뭔지 모르겠다. B&B는 Bed&Breakfast지만.. K&K는..?

내게 주어진 이 좋은 기회를 마치 모래처럼 흘려보내서는 안된다는
묘한 책임감이 나를 글쓰기로 이끈다.
로마의 밤을 좀 즐겨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지만
술은 와인 반 병으로 충분하고 축구도 결과만 보면 되었다.
아니, 사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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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보나라의 '원조집' La carbonara.나는 사실 카르보나라보다 하우스 와인이 더 인상깊었다.

로마를 찾아 내가 가장 먼저 보고싶었던 것은 팔라티노 언덕이었다.
로마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 그곳에서 이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달까.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시간의 유구함이었다.
내가 장안에서 보았던 병마용도, 투르판에서 보았던 흙먼지 속의 유적에도
로마와 같은 시간의 켜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화정 로마의 건물 위에 다시 황제의 궁이 지어지고,
원로원 회의가 열리던 곳은 다시 교화가 된다.
로마가 특별한 이유는 로마가 오래된 흔적을 가져서가 아니라,
로마의 유적들이 그 엄청난 시간의 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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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라티노 언덕. 로마는 과거의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겹겹이 올렸다.

2000년대 로마는 또 이 시간의 켜에 무엇을 또 쌓아올릴까.

21세기의 로마는 참, 발랄하다.
아침 시장의 시장 할머니, 정장을 빼입은 이탈리아 신사 정도나 좀 점잖을까.
골목만 들어가도 로마의 벽은 그래피티 천지다.
길에는 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다는 착각을 하게할 만큼의 오토바이가 있다.
부릉부릉거리는 폭주존 사운드에 그래피티.
축구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광장과 빅토리오 엠마누엘 II 기념관, 콜로세움에서
그늘을 찾아 한숨 길게 늘어져있는 그들.
자신이 깔고 앉은 대리석 기둥의 무게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로물루스의 후손들. 시저와 부르투스의 자식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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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 밑 그늘에서 쉬는 로마 청년들. (관광객인가)
그들의 널브러진 모습은 기념관의 엄숙한 전시와 대조적이다.

아무생각없던 내게 여행의 큰 질문이 하나 생겼다.
로마를 이루는 시간의 켜는 어떻게 쌓여왔는가.
현재의 로마를 이루는 사람들은 어떠한 켜를 만들 것인가.
당분간, 로마를 떠나지 않을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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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못사서 안 떠나는 것은 아니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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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에 대한 부연설명 : 나는 '미친소'라는 단어가 싫다. 만약 '미친소'가 '미국과 친한 소보다 못한 대통령'의 준말이라면 거리낌없이 사용하겠지만, 소도 牛權이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는 소에게 잘못된 사료를 제공한 인간의 과오에 의해 CJD에 걸린 불쌍한 환자이며,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피해자이다. 그런 소를 도축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미친소'라고 욕까지 해야할까.

오늘 5월 9일 청계광장에서 일어난 시위는 분명 역사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시위참여군중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일단 4만명이 넘어섰다는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 정권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적극적'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대문을 평소보다 크게 다는 때는 그리 흔하지 않은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어제 나는 연역과 논리의 대립이라는 논리학적 탐구방식의 딜레마를 통해 이번 사태를 해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조금 더 '대중의 입장에서' 사태를 볼 필요를 느낀다. 현재 중요한 것은 광우병의 위험 정도와 그 확률이 아니라, 광우병에 대해 대중이 갖는 공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대중은 왜 그 공포를 분노로 표출하는가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미국 쇠고기의 수입이 대한민국에서의 광우병 발병 위험도를 높인다는 사실이다. 분명 한국인은 이민을 가든 여행을 가든 출장을 가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를 먹어왔지만, 이제는 안방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더 많은 빈도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된다. 따라서, 아무리 그 확률이 적더라도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서 높아진 것이 분명하다. 정부 당국자 역시 각종 논거를 들고 있지만 광우병 위험이 100% 없다고 단언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것에는 위험도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미 '위험한 음식'을 많이 봐왔고 먹어오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위험한 음식을 수입할 때는 위험요소를 걸러낼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한다는 것이다. '진짜 운 나쁜 놈만 뒤질꺼여'가 아니라, 운 나쁜 놈도 안 뒤질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최선의 노력을 다해 위험요소를 걸러내더라도 미국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막을 수 없다면 수입을 말아야하는 것이 진짜 최선이고, 위험요소를 걸러낼 자신이 있다면 가능한 최선의 조치를 다 해야한다. 그것이 보건당국과 통상당국이 취할 바람직한 태도다.

지금 정부의 대응이 계속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더 키우는 이유는 바로 정부가 대중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100%의 안전을 원하긴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고, 정부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며,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살기 위해서는 청정룸에서 링겔로 영양주사받으며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최선'이다. 문제는 정부가 최선의 방책을 취해놓지 않고는, 광우병 확률이 무지 낮으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일부가 내놓는 확률론의 함정은, 그 확률이 지금까지의 발병환자만을 가지고 추정한 매우 보수적인 수치라는 것이다. vCJD의 잠복기는 10년 정도로 추정되며, 그보다 더 길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그 확률은 당연히 높아진다. 즉, 광우병 발병 확률은 현시점에서 '이렇다'라고 단정할 수 없는, 신뢰하기 좀 어려운 수치라는 것이다.

만약 광우병 환자가 더 이상 발병하지 않아 현재의 가능성이 맞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정부가 최선의 방책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변호해주지 않는다. 왜 의학자들조차 인정하는 30개월 이상의 소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무리하게 수입을 하는 것인지, 프리온이 농축된 부위(SRM)을 배제한 수입을 왜 채택하지 않은 것인지... 이미 비전문가의 눈에도 정부가 더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여지'가 많다. 과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자체가 타당한지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넘어가자면, 과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소비자가 100%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우선 여러사람이 제기한 군대와 학교의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이 10대를 분노하게 한 부분일 것이다.) 이들은 식사에 대한 선택권이 없고, 싫어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수밖에 없는 마루타가 될 것이다. 일반인 역시 100% 선택권을 갖고있지 못하다. 우리는 매우 취약한 원산지 표기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당장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우값이 비싼 것은 분명 소비자 입장에서 달갑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도시근로자에게는 위험해보이는 미국산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좀 더 합리적인 선택항으로 다가온다. 또한 한우가격이 비싼 것은 농민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해서가 아니라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이며, 이 문제는 유통과정을 선진화하는 대책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우농가가 아무런 대책 없이 염가의 미국산 쇠고기와 경쟁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적 상황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봉쇄하는 영구적이고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이 상황들이 해결된다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안전한 범위 내에서 허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왜 이러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하는지 대중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 이유를 알고있지만 - 미국과 친하다는 제스쳐를 취하고싶은 대통령의 욕심 - 그게 내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할 이유가 되지는 못하는 법이다.

여기까지가 촛불시위에 내재한 대중의 분노, 그리고 그것의 확장 배경이다. 사실 촛불시위는 광우병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부터 보여온 행보가 대중으로 하여금 '저 사람 문제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것이 광우병 사건으로 극에 달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행보를 취한 최초의 정권은 아니지만, 가장 노골적으로 한국사회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고있는 정권임은 분명하다. 우선 대통령 자신을 비롯한 청와대, 내각 고위직 인사 상당수가 수십억-수백억대 자산가이며,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상류층됨'을 표현하면서 대중의 빈축을 사고 있다. 툭하면 골프 얘기를 하는 대통령이나(막상 테니스 치면서 골프 얘기는 무척 자주한다), 땅투기가 무슨 서민적인 취미("땅을 너무 사랑해서")인줄 아는 그 주변사람들이나, 자신이 일반 국민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각인시켜주었다.

이번 대선당시 그 누구보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 유권자로서, 내심 이명박 정권의 실각을 기대하는 심리가 없지는 않다. 가끔은 시위에 나가서 머리 수도 채워주고, 적극적인 대중시위방법을 기획하여 정부를 압박하고 싶은 욕망도 꿈틀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대통령이 싫어도 그 방법은 아니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만약 법적인 절차가 아닌 대중의 '힘'으로 대통령을 밀어낸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는 꼴이 된다. 대중의 분노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분노는 법적인 절차를 빌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 혹은, 대통령은 대중의 분노에 귀기울여 자신의 결정을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한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면 애써 이룩한 절차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법과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불안한 정체(polity)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방향의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탄핵과 하야, 리콜을 요구하는 시위장의 대중에게, 그 방법이 '최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감정적으로는 저 못 생긴 사람 얼굴 좀 안 봤으면하는 심정이지만, 먹거리의 문제 못지않게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대안이 없는 혁명보다, 조금 불만스러운 개혁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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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논리학, 정치

Idea Note 2008/05/08 22:44 posted by 박형진

광우병

누군가 나에게 '만약 미국소가 들어온다면 넌 아무 생각없이 먹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마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식도가 막힐 위험을 감수하고 떡을 먹으며, 내 몸을 많이 망가뜨리는 컴퓨터 사용을 끊지 않고 있다. 미국 쇠고기 역시 마찬가지의 종류이다.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이 무서워 쇠고기를 안 먹을 '소심함'이었더라면 난 이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청정룸 안에서 웅크리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니가 대통령이라면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겠느냐?'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달라진다. 아마, 수입은 하겠지만, 그 기준은 분명 과학적으로 모든 위험성을 완벽하게 통제한 기준을 가지고 수입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99%이니 99.999%이니 운운하며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왜?

광우병 논쟁의 논리학 : 연역과 귀납

정부당국자가 '광우병 위험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광우병 소도 '거의' 없었고, 이 소를 먹고 죽은 미국인도 없었고, 미국 교포 중에서도 미국소를 먹고 죽은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미국 쇠고기를 먹고 죽을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 확실하다'. 즉, 이 논리는 확실한 귀납논리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까마귀가 까만색이므로 까마귀는 까맣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꾸로, 광우병의 위험가능성을 주장하는 측의 근거는 연역논리다.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에게서 발병하며, 미국소는 여전히 그런 사료들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입장의 사람들조차 '이런 확률이 희박하더라도 걸리면 치명적이다'라던가, '쇠고기를 자주 섭취하면 그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등을 얘기하며 논쟁을 확률론적으로 돌리려고 하지만, 이 입장의 기본 근거는 연역논리다.

사실, 두 입장 다 맞다. 미국소는 광우병이 걸릴 수 있는 과학적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국소를 먹고 죽은 미국인 혹은 한국인은 없다. 연역논리가 도출한 결론과 귀납논리가 도출한 결론이 충돌하는 상황. 이것이 정책결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때, 정책결정자는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하나?

정치 : 이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

정책결정자에게 지금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다. 연역논리의 결론이냐, 귀납논리의 결론이냐. 이는 학자라면 결론을 유보해버리고 싶은 상황이다. 그러나 정책결정자의 고민은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하에 결정을 내려야한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정책결정자가 고려해야하는 것은 결정에 따르는 손익계산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판단이다. 분명 최대한 '옳은' 것을 선택해야하는 것이 정책결정자의 임무이지만, 옳은 것 못지 않게 '이득이 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의 핵심근간 중 하나인 공리주의적 성격이다.

쇠고기 수입을 결정할 경우, 그것이 가져오는 부정적 효과(국내농가의 타격, 광우병 위험과 위험의 파급효과)와 긍정적 효과(쇠고기 가격의 하락, 미국과의 관계개선)를 함께 고려해서 이득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한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은 정책결정자가 과연 옳은 것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지만, 과연 그 선택이 이득이 되는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도 심히 의문을 품고 있다.

대중의 쇠고기에 대한 열망이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망보다 컸는가? 대통령이 누구 말을 듣고 이리 성급하게도 쇠고기 수입을 독촉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대중은 분명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욕망이 더 크다. 게다가 한우축산농가로서는 이번 결정이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의 심각한 훼손이다. 유일한 긍정적 측면인 미국과의 관계개선, 한미 FTA 체결독촉 등은 대중이 그리 염원하지 않는, 요원한 아젠다이다.

죽어보고 판단하자고?

앞에서 얘기한 안전에 대한 부분 역시 정책결정자는 이렇게 결정해야한다. 우선, 그 위험을 후에 지각하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한다. 쇠고기를 수입하고 광우병이 발병하고나서 수입을 그만두면 뭐하나. 이미 위험을 공유한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이 병은 안타깝게도 백신도 없다. 이 말을 좀 거칠게 해석하자면, 죽어보고 판단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대통령의 말처럼 쇠고기 수입 문제가 '소비자 선택 문제'라면, 소비자가 완벽하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후 수입해도 늦지 않았다. 대형 식당에서도 원산지 표기가 제대로 되어있지않은 상황에서, 게다가 학교급식이나 군대처럼 식사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다분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수입해서 '먹고 싶으면 먹어'라고 말하는 것은 '엿 먹으라'는 얘기다.

앞에서 말했듯이, 난 수입하면 먹을 용의가 있다. 맛있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 리스크라면 감수하고 맛나게 즐길만하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라면 좀 더 신중해야한다. 좀 더 체계를 갖추고, 대비를 한 상태에서 수입을 협상해도 늦지 않았던 것을 급하게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고, 논리적 딜레마는 최대한 '이미 내려진 결정'에 부합하게 해석해버렸다.

PS : 글을 쓰다보니 기존의 가설주제 - 논리적 딜레마에 대한 정책입안자의 대처 - 가 대중의 입장에서 분노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더 적절할듯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다듬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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